세우거나 쓰러지지 않고 구겨진


2024

<세우거나 쓰러지지 않고 구겨진> 전시에는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우연히 찍혀 휴대폰에 저장된 어쩌다 찍힌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어쩌다 찍힌 사진들을 통해 어떠한 계획이나 의도 없이 찍혔다는 점에서 무언의 해방감을 경험한다.
Froissé sans se lever ni tomber
2024

L'exposition < Froissé sans se lever ni tomber > est constituée de photos prises accidentellement dont on ne sait ni quand ni comment elles ont été prises et enregistrées sur un téléphone portable. À travers des photos prises accidentellement, l’auteur éprouve un sentiment tacite de libération dans la mesure où elles ont été prises sans aucun plan ni intention.
Crumpled without getting up or falling
2024

The exhibition < Crumpled without getting up or falling > is made up of accidentally taken photos of which we do not know when or how they were taken and recorded on a mobile phone. Through photos taken accidentally, the author experiences a tacit feeling of liberation to the extent that they were taken without any plan or intention.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찍힌다. 사진을 구긴다. 사진이 구겨진다. 김기훈은 찍음과 찍힘, 구김과 구겨짐을 양 어깨에 짊어진다. 그리고 일어선다. 떨어뜨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걸음을 옮기려면 균형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듯이 서기 쉽지 않고, 맥없이 쓰려져버릴 수도 없다. 김기훈은 자기 자신을 세우려 하지 않고 서지 못해 쓰러지지도 않는다. 세우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 몸은 다만 구겨진다. 그렇게 구겨진 몸으로 건진 사진은 그가 세울 수 없는 한편 스스로 쓰러지지 않는 사진이 된다. 구겨진 채, 서다 말고 쓰러지다 만 상태에 머무는 사진은 움직임을 내포하는 정물이 된다.

사진은 시선의 매체다. 사진을 보는 이는 사진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무엇을 육하원칙에 입각해 따지기 쉽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찍었나. 사진에 찍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나. 그런가 하면, 사진이 보려는 것도 보여주려는 것도 현실 또는 사실의 실제를 벗어난다면, 이러한 사진은 무엇을 보고 보여주는 것일까. 김기훈은 ‘의도를 덜어내는’ 사진을 손에 든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보여줄지 ‘집착하지 않으려는’ 카메라를 든다. 그가 렌즈에 눈을 대고 셔터를 누르기 전 또는 그가 렌즈에 눈을 대고 셔터를 누른 후, 다시 말해 사진을 찍기 전과 찍은 후를 잇는 시간의 동선. 사진이 될 수 있는 시간 또는 사진이 되지 않을 시간에 ‘어쩌다 찍힌 사진’이 남는다. 의도도 집착도 멀리한 사진이 김기훈의 손에 주어진다.

사진이 “시선의 권리”를 부여할 때, 김기훈의 사진은 시선의 권리가 주어지기를 주저한다. 어쩌다 찍힌 사진은 김기훈이 보지 못한 순간의 흔적이고, 이 순간 이 흔적은 돌아보는 자의 몫이다. 앞을 내다보는 사진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사진. 따라서 이러한 사진은 “어떤 사람이 바라보고 자신의 시선 안에 배치하고 붙잡아두고 시야에 간직하거나 사진으로 ‘찍을’ 권리”를 선포하는 데 무심하다. 어쩌다 찍힌 사진은 사진의 의도에 집착하는 시선의 권리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진의 권리를 내포한다. 어쩌다 찍힌 사진의 어쩌다 존재하는 양상을 포착하는 시선은 명시되지 않고 암시된다. 시선의 권리를 덜어낸다.

우연을 포착한 눈은 놓칠 수 없는 장면을 “재촉”하듯 붙잡는다면, 우연을 다시 쓰는 손은 우연을 “지체”하듯 망설인다. 김기훈은 주어진 장면을 건진 눈으로 의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를 선호하는 삶을 건지고, 주어진 장면을 만진 손으로 의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를 선호하는 삶을 만진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건지고 만진다. 그리고 그렇게 건져지고 만져진 삶의 자세는 세우려 해도 세울 수 없고 쓰러지려 해도 쓰러질 수 없다. 아무도 세우지 않고 스스로 쓰러지지 않는 모든 것은 다만 구겨진다. 세우거나 쓰러지지 않고 구겨진다.

글 평론가 한승은